1. 발레 변천사
치마 길이가 다양한 발레 의상.
궁중 발레 시대의 발레 의상은 지금과 많이 다른 형태였습니다.
귀족들의 보여주기 위한 의상이었기에 권위와 허위 의식에 걸맞은 가발과 가면, 부풀린 스커트 화려한 장신구 굽 높은 신발이 기본이었으므로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 옷을 입고 우아한 포즈로 이리저리 뽐내며 무대 위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 후 귀족들의 사교춤에서 전문 무용수의 영역으로 옮겨지기 시작하며 의상도 변화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변화는 남성 무용수에게 먼저 일어났으며 그로인해 테크닉도 발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성 무용수는 그때까지 루이13세의 발목을 덮는 의상을 입어야 한다는 칙령 때문에 또 사회적 편견 때문에 많은 제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시대이든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죠
바로 카마르고라는 발레리나인데요, 타고난 재능으로 남성 무용수들의 테크닉도 거뜬히 해내는 그녀는 여성 무용수의 의상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완벽한 앙트르샤를 꼭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었습니다. 황제의 칙령을 어기고 어느 날 과감히 스커트를 발목 위로 자르고 무대에 등장해 버린 것입니다. 관객들은 그녀의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그 사건 이후 그녀의 인기는 치솟기 시작하고 발레리나의 치마는 더욱 짧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낭만주의 시대에는 종 모양의 형태로 변화하였고 그 후로는 점점 더 짧아져 다리 전체를 그대로 드러내는 접시 형태의 클래식 튜튜가 발레 의상의 대명사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시대가 점차 변하면서 무용 의상은 점점 미니멀 해지고 현대의 작품들에서 의상은 무용수의 움직임을 더 잘 보일 수 있도록 디자인되고 있습니다.
낭만주의 시대의 종 모양 형태의 의상을 로맨틱 튜튜 라고 부르는데 그 대표적 작품이 바로 라실피드 라는 발레 작품입니다. 당시 마리 탈리오니가 입고 나온 로맨틱 튀튀는 요정역할을 함으로써 공기처럼 나풀나풀 날아다니고 환상을 자아내는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얇은 천을 여러 겹 겹쳐 이 스커트를 고안한 디자이너는 화가 외젠라미 인데 라실피드 이후 약 백 년 간 이 의상은 발레리나의 공식 복장이 되다시피 했으며 지금도 발레스커트의 대표적 이미지입니다.
클래식 튜튜는 그 후에 등장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백조의 호수’에서 발레리나가 입고 나오는 백조와 흑조의 의상이 바로 그 형태입니다. 현란한 테크닉과 아름다운 다리 라인을 과시하는 데 안성맞춤입니다. 튜튜는 무용수가 입고 여러 가지 동작하기에 불편함이 없어야 하므로 가벼워야 하고 접시처럼 확 펴져야 해서 여러 겹의 망사로 챙을 만들고 그 위에 치마를 얹히는데 때때로 이 망사 챙이 남성 무용수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합니다.
발레에서 치마 길이와 모양은 발레의 사조와 테크닉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치마 길이가 짧아지지 않았다면 현란한 테크닉과 아름다운 라인들을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발레가 계속 남성 무용수의 예술로 남아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2. 발레의 전성시대
낭만주의 시대의 발레를 알아보겠습니다.
이때 당시 발레는 모든 예술의 정점에서 빛나던 시절이었습니다.
대중들은 발레리나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그중 에도 빠드꺄트르 라는 작품은 당대 최고의 발레리나 네 명을 한 무대에 세워 온 유럽을 들썩였던 작품입니다. 산적들도 흐물거리게 만들었던 탈리오니, 육감적인 매력으로 설레게 했던 파니 체리토, 지젤 신화의 주인공 카를로타그리시, 그리고 떠오르는 별 덴마크 출신의 발레리나 루실 그란 이 네 발레리나가 한무대에 선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사건이었습니다.
허마제스티 극장의 극장장인 럼리는 처음 이 계획을 가지고 나왔을 때는 모든 이들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된다면 대박이지만 불가능 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럼리는 내심 자신 있었습니다. 바로 쥘 페로를 안무가로 영입할 계획이었기 때문인데요 사실상 페로는 탈리오니와 한때 파트너로 친분이 두터웠고, 그리시는 사실상 아내였으며 체리토는 그의 제자였고 그란은 본인이 이 역사적인 무대에 함께 하고 싶어 하였기 때문입니다. 네 명의 무용수를 한 무대에 모으는 것에 성공하였지만 문제는 그때부터였는데요 발레리나들의 엄청난 기 싸움에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죠.
처음 등장 순서를 정할 때부터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그래서 동서고금 막론하고 다 통하는 그 수법, 나이순대로 하자는 의견이 받아들여졌습니다. 발레리난 시대를 연 장본인 이라고 할 수 있는 탈리오니에 대한 예우는 동의 되었고 결국 나이 역순으로 첫테이프를 끊고 탈리오니가 마지막을 장식하는 형식으로 구성하였습니다.
사실 이 작품은 최초의 줄거리가 없는 발레 작품입니다. 네명의 발레리나의 기량과 매력을 뽐내고 부각시키는 것이 목표였던 작품이므로 춤을 위한 춤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이벤트성 작품이 가능했던 것은 이 시대에 발레리나들이 대중의 우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가장 인기 있는 아이돌 4명을 한무대에 그들을 위한 작곡을 하고 안무하여 공연을 한 것이라 생각하면 되겠죠,
다시 언젠가는 무용수들이 대중의 관심을 받아 빛나던 전성시대를 다시 한번 만끽할 수 있는 때가 올까요,, 우리나라의 무용수들이 세계에서 멋진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 주신다면 발레계에도 피겨여왕 김연아처럼 국내의 위상을 높이며 활동하고 있는 무용수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그들이 해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주목받고 설 수 있는 무대가 더 많아지길 기대해 봅니다.
<출처- 발레이야기,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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