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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이야기

낭만주의 발레 <라 실피드>

by limiggg 2023.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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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낭만주의란 


 예술에서의 낭만주의란 18세기에 전통을 중시하는 학교에 의해 확립되었던 융통성 없고 엄격한 예술을 타도하려는 운동이었다. 그러나 본래의 낭만주의는 문학운동이었는데 예술이 빅토르 위고의 시나 극과 같은 문학작품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낭만주의 시인들 예술가들 작곡가들은 불가사의하고 초자연적인 것에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한 인간의 추구를 묘사하였으며 천상의 사람들에 대한 인간의 희망이 없는 사랑을 예증하였다. 이보르게스트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 [18세기]는 합리주의 시대였다. 그때의 예술가들은 외관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었으며 그드르이 작품에서 흔히 감정과 의미를 희생시켜 가면서도 고전적 완성을 이루려고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낭만주의 외침은 해방이었다. 고전적 제한의 굴레로부터 반란의 폭발 속에서, 전쟁과 혁명으로 불안정한 속에서 성장한 새 세대의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내면의 세계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들은 보다 인간적인 표현의 수단을 추구하였고 그들의 상상력과 영감은 지고한 서정시의 세계로 자유롭게 나래를 폈다.---
1815년 나폴레옹 시대가 끝난 이후부터 20여년간 프랑스의 모든 예술에 낭만주의가 지배하였고, 이것은 곧 전 유럽에 퍼졌다. 이전의 계열들은 무시 되었고 신 작품들은 새로운 청중과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의미가 있고 감정적인 내용을 담고 제작되었다. 어느 의미에서는 낭만주의는 과거의 현실주의로부터 탈피하기 위한 시도를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10여년 동안 전쟁으로 인하여 몹시 고통을 받았다. 광산과 공장에서의 산업혁명의 발전은 전 유럽에서 혜택을 받지 못한 수 백만명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고통과 비참한 생활을 가져다주었다. 따라서 색채, 환상, 우화 및 전설, 낭만적인 사랑과 아름다운 꿈을 나타낸 낭만주의 운동은 현실의 지저분한 생활에 대한 반항을 표현하였다.
---고통스러운 현실과 환상적 가능성에 대한 동경 사이의 대조를 표현하기 위해 발레에서도 새로운 주제를 사용하였다. 예를 들면 초자연적 존재가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던가, 또는 죽은 처녀가 부저한 연인을 괴롭히기 위하여 무덤 속에서 튀어나왔다던가 세속적이고 관능적인 존재에 대하여 정신적이며 영적인 존재가 승리를 거두었다든가 같은 것이 있었다. ---

 


2. 라 실피드


 낭만주의 대표 작품 《라 실피드》(프랑스어:La Sylphide)는 프랑스의 발레 작품으로, 현존하는 낭만 발레 중 가장 오래된 작품 중 하나이다.
이 발레에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원래의 버전은 1832년 이탈리아의 무용수 마리 탈리오니의 아버지인 필리포 탈리오니(Filippo Taglioni)가 안무한 것이며, 다른 버전은 1836년 덴마크의 발레 안무가 아우구스트 버논빌(August Bournonville, 1805-1879)이 안무한 것이다. 현재는 버논빌이 안무한 버전만이 남아 있다.
이 발레는 스코틀랜드의 전원을 무대배경으로 하는 매우 낭만적인 이야기이다. 
내용은 총 2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실피드는 숲이나 연못가에 사는 요정의 하나로, 그 춤도 경쾌해야만 했으며 그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마리 탈리오니는 새로운 도약의 기법을 많이 구사하고 그와 동시에 스텝을 요정처럼 가볍게 보이기 위해서 발가락 끝을 세워 춤을 추었다.
즉 발레 용어에서 말하는 "쉬르 라 포인트"로 추었던 것이다. 이것은 발레 기법의 대혁명이었다.
탈리오니가 처음으로 쉬르 라 포앙트 기법을 발명했는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도 있으나 아무튼 그녀는 보통 신발로는 도저히 발끝으로 서서 출 수 없기 때문에 《라 실피드》에서 쉬르 라 포앙트로 추기 위해서는 그것이 가능한 슈즈를 연구해야만 했다. 쉬르 라 포앙트를 추기 위해서 특별히 연구된 신발로서 토슈즈가 발명되었으며, 발에 밀착된 천을 사용하고 그 선단은 잘라낸 것처럼 평면으로 되어 있으며 딱딱하다. 뒤꿈치의 부분은 발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게 만들어졌으며 바닥은 납작하고 매우 작다. 그리고 추는 도중에 벗겨지지 않도록 긴 끈을 발목에 묶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형태의 토슈즈는 19세기 후반에 개량된 것이며 탈리오니의 것은 그와 비슷하고 선단만 삐죽했다. 토슈즈가 발명된 것은 여성 무용수의 춤에 대개혁을 가져왔으며 그 이후로 기법은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탈리오니의 또 하나의 공적은 《라 실피드》에서 사용한 의상에 있다. 소위 로맨틱 튀튀라는 것이다. 그 순백(純白)의 의상을 입고 추는 발레를 발레블랑(하얀 발레)이라고도 한다.
실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동경의 일환으로서 춤은 점차 향상되어갔다. 더욱더 공중에 솟아오르며 지구중력에 도전하고 발끝으로 서서 춤을 추었다. 어떤 발레에서는 여성 댄서들이 실제로 줄에 매달려서 무대 위를 날았으며 무용수들은 머리 위로 활주할 수가 있었다. 이런 장치들은 그들이 연기한 천상의 사람에 대한 역할 뿐만 아니라 낭만적인 발레가 여인들에게 주는 영적이며 고상한 역할에 대한 상징으로서도 유용하였다. 따라서 발레리나는 새로운 경지의 매력과 인기를 불러일으켰다. 반면에 남성 댄서들의 역할은 여성들의 우아한 솔로 연기에 보조나 할 정도로 점점 감소하여 갔다.
커스타인은 1840년대의 남성댄서들은 베스뜨리 , 도베르발 및 가르델이 춤추던 시기에 비교하여 볼 때에 형편없는 지위를 차지하였다고 서술하고 있다. 즉 모든 솔로는 발레리나에게 주어졌고 남성 댄서들은 파트너로서 해야 할 역할 조차 감소하여 여성 댄서들의 보조나 배경의 역할을 할 정도였다. 




<참고 - 세계 무용사, 금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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